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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 04 청춘 위로

응원과 멘토가 필요한 젊은 그대

Youth 언제 청춘이 아프지 않던 적 있었던가? 지금 청춘을 보내는 이들의 부모세대도, 더 거슬러 조부모 세대도 그들만의 아픈 청춘을 건너왔을 것이다.

언제 청춘이 아프지 않던 적 있었던가? 지금 청춘을 보내는 이들의 부모 세대도, 더 거슬러 조부모 세대도 그들만의 아픈 청춘을 건너왔을 것이다. 전쟁에 나가 총을 들기도 하고, 전경을 향해 화염병을 던지거나, 이 나라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인생을 바치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이들은 아픔과 맞서왔다. 그래서 청춘을 보는 기성세대의 태도는 대대로 “엄살부리지 말고 더 노력해라”였고, ‘하면 된다’는 기성세대의 논리 때문에 20대 청춘들은 죄책감과 함께 스펙을 쌓았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시장에서 이들에게 매긴 가격은 88만원. 이 시대의 청춘들은 군말 없이 이 가격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2011년에는 이 새로운 아픔을 앓고 있는 청춘에게 따뜻한 위로의 손을 내민 이들이 많았고, 위로가 절실했던 20대는 이 손길에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다.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진통제가 되어준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100만부가 넘게 팔리며 위로의 필요성을 모두에게 일깨워주었으며 문화계 전반에서 ‘청춘 위로’ 아이템이 큰 인기를 끌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불러온 청춘 도서 열풍

올해는 유난히 청춘에 관한 책이 많았다.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심리학이 청춘에게 묻다>, <청춘에게 딴 짓을 권하다>, <청춘아, 너만의 꿈의 지도를 그려라> 등 수 없이 많은 책들이 ‘청춘’의 이름을 달고 쏟아져 나온 것이다. 이러한 청춘도서 열풍을 불러일으킨 전면에는 올 상반기 최고 히트작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있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서울대 학생들에게 최고의 멘토로 꼽히는 김난도 교수가 청춘들에게 보내는 42편의 격려 메시지들을 엮은 책이다. 이 책은 출간 후 8개월 만에 100만부 판매를 돌파하며 한국출판물 사상 최단기간 밀리언셀러라는 기록을 달성하였다. 인터넷 서점 YES24에 따르면 판매량 100만부를 넘어선 지난 8월까지 이 책의 구매자 중 43.1%가 20대였고, 30대 구매자가 24.1%로 뒤를 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취업난에 시달리는 많은 젊은이들이 이 책의 인기를 견인했던 것이다. 이 후 이 열광적인 인기에 편승하여 20대를 겨냥한 각종 도서들이 봇물 터지듯 출간되었다. 이 도서들은 5년 전 20대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와 같은 경제상식 서적이나 성공하기 위해 열심히 살라는 메시지를 담은 자기계발 서적이 아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같이, 방황하고 있는 20대 청춘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하고 있는 책이다. 2010년 8월부터 2011년 7월까지의 Daum의 트렌드 차트를 보면,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2011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보다 월등히 높음을 알 수 있다.

문화 전반에 걸친 청춘 위로 트렌드…멘토 부상, 자조 문화 양산

‘청춘 위로’ 열풍은 출판계를 벗어나 문화 전반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청춘 콘서트, 청춘 페스티벌, 청춘 음악회 등 흔들리는 20대 젊은이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올 상반기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2009년에 처음 시작된 안철수•박경철의 청춘 콘서트는 올해 들어 점점 규모가 커지면서 사전 예약제임에도 불구하고 매회 2000명에서 5000명의 청중을 동원할 정도였다. 덕분에 안철수와 박경철은 이 시대 젊은이들의 최고의 멘토라 평가 받으며 웬만한 연예인이나 정치인보다도 인기 많은 ‘스타’로 떠올랐다. 덕분에 ‘청춘 위로’라는 키워드에 관한 기사공급도 대단했다. 지난 2010년 8월부터 2011년 7월까지의 Daum의 기사 공급량 차트를 보면, ‘청춘 위로’에 대한 관심이 올해 들어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방송계가 이를 놓칠 리 없었다. MBC는 신년특집 ‘MBC스페셜’로 안철수•박경철의 심도깊은 대화를 다뤘고,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지난 7월 여름방학 특집 제 2탄까지 방영했다. 또한 케이블 방송 tvN은 ‘스타특강쇼’라는 프로그램을 새롭게 편성하여 20대를 대상으로 한 연예계 유명인사의 강연을 방송하며 트렌드를 뒤쫓기도 했다. 이 외 MBC ‘무한도전’에서는 유재석과 이적의 노래 “말하는 대로”가 내일이 불안한 20대의 현실을 위로하며 큰 인기를 끌었고, ‘보스를 지켜라’와 ‘하이킥3: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는 88만원 세대를 반영하는 캐릭터가 등장하여 많은 20대들의 공감을 얻었다.

한편, 청춘들이 직접 만들어낸 ‘자조 섞인 공감’도 하나의 문화로 형성되었다. 이른바 ‘루저문화’. 자신들을 패배자로 치부하는 사회적 구조와 ‘엄친아’들만 인정받는 세상에 대한 ‘잉여’들의 풍자를 담은 문화이다. 2009년 말 장기하가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떠오르며 주목받은 루저문화는 책, 영화, 연극 등 다양한 대중문화로 확대되었으며, 2011년 ‘병맛’웹툰으로 젊은이들의 해방구가 되어주었다. 23세 대졸백수가 위대한 때밀이로 거듭나는 ‘목욕의 신’과 스스로를 88만원 세대라 말하는 이말년(이병건) 작가의 ‘이말년 씨리즈’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위로받고 싶은 젊은 그대

“언니 저 정말 취업준비 열심히 했거든요. 정말 열심히 해서 토익도 900점 넘었구요. 컴퓨터 자격증만 3개구요. 그런데 서류 200번 떨어지고 면접은 50번 떨어졌어요. 대학 4년 반 동안 추억도 없고 알바한 기억밖에 없는데 남은 거라고는 학자금 대출 3658만원이네요”

얼마 전 방영되었던 <하이킥3: 짧은 다리의 역습>에 등장하는 백진희의 대사는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대한민국의 20대를 울렸다. 이 짧은 대사가 그들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20대 청춘들을 위로 받고 싶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취업난. OECD의 ‘2011 고용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고용은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어가고 있으나 올 1분기 청년고용은 3년 전보다 5.4%나 감소했다고 한다. 노동시장에서 사회적 불균형이 형성되고 청년취업난이 극심해지자 젊은이들 사이에서 ‘무한경쟁’이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대학생들은 토익점수와 학점을 올리기 위해 새벽부터 도서관에 나가 공부를 하며, 순전히 스펙을 쌓기 위해 봉사활동과 동아리활동을 한다. 하지만 빠듯한 이 삶도 여유있는 학생들의 얘기일 뿐이다. 학자금대출과 방세,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밤낮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가난한 학생들은 스펙을 쌓을 시간조차 나지 않는다. 웬만한 스펙 없이는 취업도 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거대한 악순환고리가 생겨난다. 따라서 대학시절에 아르바이트한 기억밖에 없는 위 백진희와 같은 대학생은 서류만 200번을 떨어질 수밖에 없고, 고시원에서 3658만원의 빚을 지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청춘들도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2010년 인구 10만 명 당 20대 자살 건 수는 47.6건으로 2000년 수치인 22.2건의 두 배가 넘는다. 지난 10년 간 자살률의 연평균증가율을 분석해보면 20대의 자살률은 연평균 7.9%나 상승해왔음을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학벌위주의 취업경쟁이 극심해지며 젊은 층의 스트레스가 높아졌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지만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이 세상에서 젊은 청춘들은 ‘더 열심히 해보라’는 채찍질을 원하지 않는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나도 너만할 때는 그렇게 아팠다’는 진심 어린 공감과,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라’는 따뜻한 위로이다. 김난도 교수의 말처럼, 비록 이것이 아픔의 원인인 사회구조를 뒤엎는 ‘수술’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아픔을 잊게 만드는 ‘진통제’에 불과할지라도.

위로가 필요한 전세계의 88만원 세대들

88만원 세대란 ‘20대 근로자의 95%가 월평균 88만원을 받는 비정규직 세대’를 의미하는 우리나라의 신조어이다. 그런데, 최근 해외에서도 취업난에 시달리는 20대 청년층을 일컫는 비슷한 의미의 신조어들이 생겨나고 있다. 영국에서는 불안정하고(Insecure) 압력을 받으며(Pressed) 과중한 세금부담에 시달리고(Overtaxed) 빚에 쪼들리는(Debt-ridden) 20대를 IPOD세대로 부르고 있으며, 그리스에서는 청년들을 592유로(그리스의 25세 이하 법정 최저 한달 임금, 약 91만원)세대라고 부른다. 경제대국 미국에서도 학교를 졸업하고도 독립하지 못해 부모와 함께 사는 청년들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부메랑 키즈’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웃나라 일본도 마찬가지. 장기불황으로 인해 경제성장을 경험해보지 못한 ‘잃어버린 세대’라는 신조어와 함께 취업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청년들을 부르는 말인 ‘프리터 세대’라는 신조어도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해외에서도 잇따른 러브콜을 받아 중국, 일본, 브라질, 이탈리아 등 7개국과 수출계약을 체결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20대와 같은 상황에 놓인 이 타국 청춘들에게도 공감과 위로가 필요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