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먹는 식사는 지겹다. 급히 찾아낸 단어였지만 가장 어울리는 말이기도 했다. 혼자 먹는 것은 정말 지겨운 일이었다. 아니, 두렵기까지 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혼자 먹는 식사가 아니라, 혼자 음식점에 가서 사 먹는 식사였다. 2년째 혼자 살고 있지만, 집에서 혼자 먹는 식사는 편했다. 문제는 음식점에서 혼자 먹어야 할 때였다. 일요일 저녁부터 나는 극심한 월요병을 앓곤 했는데, 그것은 출근길이나 업무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다가올 한 주간의 점심시간에 관한 것이었다. - 윤고은 '1인용 식탁' 중에서 -
소설 ‘1인용 식탁’에서 주인공 오인용은 혼자 밥 먹는 법을 알려주는 학원에 등록한다. 고깃집에서 삼겹살을 주문해 먹는 법까지 배우게 되지만 학원을 수료할 무렵에 깨닫게 된다. 학원에서 익힌 기술로 혼자 밥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혼자 먹는 유일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위안을 얻었다는 걸.
혼자 밥 먹기의 어려움을 다룬 소설이 나올 정도로 혼자서 무언가 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보이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 요즘 주위를 보면 혼자서 커피를 마시고, 쇼핑을 하며 여가를 보내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혼자 있다고 해서 외롭거나 쓸쓸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혼자만의 자유로움을 즐기는 사람은 같이 할 사람이 없어서 고민하기보다는 차라리 혼자 노는 법을 터득하는 게 낫다고 여긴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어 더 매력적이라는 이야기다. 어색하지 않고 주눅들지 않고 자신만의 여유를 즐긴다.
혼자 밥 먹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음식점도 생겨났다. 전체 좌석의 절반 이상이 1인석인 일본식 라면 전문점은 인기다. 영화나 공연의 1인 티켓 예매율도 해가 거듭될수록 높아지고 있다. 티켓 예매 사이트 인터파크ENT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1인 1티켓 구매 수는 2006년 9만6000건, 2007년 14만1000건, 그리고 2008년 21만4000건으로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맞춰 나홀로 관람객을 위한 싱글 지정석 연극, 나홀로족을 위한 놀이동산 프로그램 등도 출시되었다.
한국관광공사의 ‘국민해외여행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혼자 여행하는 비율은 2005년 13.6%에서 3년 만에 26.6%로 늘었다. 반면 친구 및 동료와 여행했다는 비율은 55.1%에서 41.2%로 줄었다. 그만큼 혼자 여행하기의 비율이 높아졌다. 해외 여행의 평균 동반자 수도 2005년 7.7명에서 2008년에는 4.4명으로 급감했다.
혼자 떠나는 여행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일정에 따라 단체로 움직이는 패키지 상품을 통해서는 여행의 진정한 묘미를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나홀로 여행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살펴보았다. 2009년 8월부터 2010년 7월까지 Daum의 트렌드 차트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한국인들의 혼자 떠나는 여행과 패키지 여행에 대한 관심은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삶에 대한 관심이 ‘우리’에서 ‘개인’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제 ‘나’에 대한 관심으로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소속된 조직에 얽매이거나 주변 환경에 의지하기 보다는 자신의 힘으로 생활을 꾸미고 나만의 삶을 즐기려 한다.
예전에는 남의 시선을 괜히 의식했다면 이제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즐기는 모습이 오히려 당당해 보인다. 혼자 노는 것은 독립된 사람이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면이고 자기 삶의 ‘개성’표현일 뿐이다.
사회문화가 복잡해지고 개인의 가치관이 더욱 다양해짐에 따라 사람들의 삶의 방식도 매우 다양해지고 있다. 남보다는 나를 중심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들은 이제 보편적인 추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혼자 놀기는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미국에서는 이와 같은 현상이 한국보다 일찍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이를 ‘글루미 제네레이션(Gloomy Generation)’이라고 한다. 직역하면 ‘우울한 세대’이지만 의역하면 ‘우울한 감정이나 외로움을 즐기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아이팟과 닌텐도는 시공간 제한 없이 휴대하면서 혼자 집중할 수 있는 도구들이다. 넷북과 스마트폰의 확산, 무선 인터넷의 확대는 혼자 놀기 좋은 환경을 만들었다. 혼자 즐길 수 있는 기술의 발달은 외로움을 즐거움으로 변화시켰다. 물리적으로는 혼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선 인터넷을 통해 메신저로 대화할 수 있고, 휴대폰을 가진 이상 어디서든 누군가와 통화할 수 있다. 이런 네트워크는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도 느끼게 한다.
최근 결혼관의 변화 등으로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1인 가구는 2000년 226만에서 지난해 347만 가구로 53.5% 증가했다. 1인 가구 비중은 전체 가구 중 약 20%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그 비중은 점차 늘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가구 구조의 변화는 혼자 보내는 시간의 증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우리 사회에서 건강한 개인주의의 확산으로 연결될 것이다.